우리나라 정치의 장기 집권층은 항상 이분법을 써왔다.
근대 초기부터 지역적 대립을 부추기며 이분법을 만들었고, 급기자 "우리가 남이가"까지 나왔다.
그리고 이른바 초원복집사건에서 그들의 전략적 행동이 밝혀진 사례도 있다. 1
일베의 등장
최근 활약하고 있는 일베충 씨발것들의 역겨운 활동들이 많이 두드러지고 있는 편이다.
그들은 무분별하고 비 이성적인 사고와 행동양식으로 상대를 무력화하는 행태를 즐긴다.
그래서 인지 사회적 비적응자들이 많이 밀집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틀려져가며 튀어나오는 잘못된 욕구를 일베를 통해 배설하는 똥통이 아닌가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흔히 말하는 낙오자가 아니라 나름 사회적으로 성공한 지위와 수입을 거두는 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생활권 환경 속에서 제대로 적응하였다면 그런 일탈을 즐기며 영웅놀이를 하였을까?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주 심각한 부적응자이고 정신적 이상이나 그에 준하는 문제가 내재되었기에 그러한 삐뚤어진 배설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그러한 행동들에서 나타나는 카타르시스와 서로 핥아주며 위로하는 병신력의 발전은 점점 더 삐뚤어져가는 광기를 더더욱 가속화 시켜주는 것으로 보인다.
일베의 역할
일베는 전통적으로 끊임없이 이분법적인 피아 구분을 해왔다.
그러기 위해 가장 흔하게 쓰여져왔고 등장했던 컨텐츠가 바로 지역색에 기반한 공격이며, 또 하나는 인신공격과 여성 비하였다.
그들이 추종하던 세력과 가장 닮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여튼, 일베는 자극적인 언행으로 사회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고, 자기들만의 병신력으로 서로서로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러한 언행을 접하는 아이들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 전반적인 관심도나 지식이 미숙한 사람들이 보기엔 그냥 재밌어 보이는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소리를 반복해서 듣다보니 그 아이들은 이것이 사실인양 인지하게 되고 맹신하게 되는 것이다.사실 나도 어느 정도의 똘끼와 병신력을 좋아하긴 하지만 애들은 다른 점이 있다.
확실히 병신력은 충만하지만, 똘기 넘치고 유쾌한 병신 코스프레가 아니라 그냥 병신이다.
난잡하지만 정리하자만, 내가 생각하는 일베의 역할 중 하나는 이것이다.
미성숙한 여론을 끌어모아 세력화하고 같이 썩도록 만든다.
이들의 혼탁한 비린내는 우리 모두의 시야를 가리게 될 것이다.
일베의 지지세력
그들의 활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를 했던 자가 있었는데, 그는 변리바바이다.
변리바바는 일베야말로 진정한 보수의 젊은 일꾼이라며 칭송하였다.
일베의 어거지를 지지하고 독려하던 이가 과거에 타인에게 고소를 남발하며 자기 정당화를 할때 훈계하듯 뱉은 말이 있었다. 2
이러한 앞뒤가 맞지 않는 어폐를 보면 그를 포함하여 일베와 일베가 추종하는 무리들의 상태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변리바바는 실질적 세력은 아니라고 본다. 그냥 자투리 세력 정도이며, 토사구팽의 개 역할을 도맡아하고 있다. 본디 그 정도 그릇일 수도 있고 운명이 안 따라줘서일 수도 있지만, 뭐가 되었든 일베에서조차 외면받고 있는 지금의 그는 성재기씨와 궤를 같이하지 않을까 싶다.
비 공개적으로는 국댓원 등에서도 많은 지원을 해주었을 것이라 보인다. 시간 딱딱 맞춰서 댓글 달라고 시계도 주고 말야..
일베의 확산
모두들 느끼다시피 이러한 일베의 활동이 점점 커지고 사회적인 악영향도 많았다.
급기야는 브로라는 자가 나타났는데, 난 이러한 모습을 보며 일제 강점기 시대의 일본에서 행했던 활동들이 떠오른다.
무력과 회유를 통한 상대의 의지를 꺽고 억압을 하며 강대한 모습으로 비취도록 과장을 한다.
그리고 적당한 때가 되어 이와 같은 방법이 더 이상은 영향을 주지 않게 된다.
여전히 의지를 꺽지 못했거나 더 이상의 공포정치가 필요하지 않을 때이다.
그때부터는 문화적인 공략을 시작한다. 그 일환 중 하나가 유행어처럼 번졌던 일베 특유의 말투와 어법이었으며, 현재로서는 다날 소속의 자칭 가수인 브로가 등장하였다.
문화 컨텐츠로서 일베에 대한 선입견은 더욱 낮아지며 이전보다 생활 밀접한 접근이 되었다.
그럼 브로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컨텐츠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여기서 다시한번 이분법이 등장한다. 여성 vs 남성.
다시 말하면 최소한 50% 이상의 밑천은 가져갈 수 있는 싸움이 되는 것이다.
마치 빨갱이 프레임과도 같으며, 아직도 빨갱이를 운운하며 맹신 하는 사람이 많다는걸 보면 이러한 전략은 주효한 것이란 반증이 된다.
난 우리나라 정치계가 이분법을 행하여 왔던 것이 1900년대 초반의 경험에서 기인 했을 것이란 생각에 무척 불쾌하며 아직도 여기에 열광하고 동참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 놀랍다.
그리고 브로의 등장으로 인해 그들의 언행에 대한 시선이 조금씩 긍정적이 되어가는 것이 우려스럽다.
-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돼." [본문으로]
- 변희재는 “사회적 발언을 하려면 최소한 1주일에 2~3권 이상의 사회과학서, 인문과학서 책을 읽고, 매일 신문과 잡지의 글을 최소 3시간 이상 읽고, 정부 정책 등에 대한 보고서도 주마다 서너 편씩 읽어라”라고 반론했다. 이어 이것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블로그나 트위터에 글을 못 쓸 것이야 없지만, 김민선처럼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해배상 소송의 위협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충고해주는 것이다. 참고로 나의 경우는 수많은 공격적 글을 쓰지만, 10년 간 오직 단 한번 소송에 걸렸으나 법적 책임을 물은 바 없고, 언론중재위에서 정정보도 판결도 받은 바 없다. 아무리 공격적인 글이라 하더라도 법적 선을 정확히 이해하고자 노력해서 글을 써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심해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공적 글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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